"자네를 위해 이슈가르드식 차를 준비해 보았네!"
어쩐지 평소에 비해 동작이 과하다는 느낌이 있기는 했다. 모험가는 오늘따라 그에게도 기분이 좋은 일이 있겠거니 하고는 별 의심 없이 차를 받아마셨다. 그러나 그 한 모금은 목구멍을 다 넘어가지 못했다. 콜록콜록, 커헉. 한참동안 기침을 해 대던 모험가는 얼굴을 찌푸린 채 겨우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씨익 웃고 있었다.
"후후, 거기엔 후추가 들어있었지."
테이블 모서리 끝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로, 모험가의 얼굴과 모험가가 내려놓은 컵을 번갈아 보며, 오르슈팡은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배신감에 찬 눈동자... 아주 좋아!"
오르슈팡? 아니, 오르슈팡이 아니다 이건. 모험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아까부터 묘한 위화감이 들었던 것을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정체가 뭐야. 오르슈팡은 어디에 있지. 모험가가 다가서자 오르슈팡의 모습을 한 그것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딱해 보였다. 그러자 별안간 잘 닫혀 있던 출입문이 확 열어제껴졌다. 동시에 바깥에서 커르다스의 눈 섞인 찬바람이 매섭게 들이닥쳤다. 모험가가 순간 감았던 눈을 뜨자 보였던 것은 눈보라 사이로 유유히 멀어져 가는 임프의 날갯짓이었다.
그것이 모험가가 기억하는 그 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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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배달부 모그리가 모험가에게 편지가 왔다며 건네는 것이었다.
벗이여... 도움이 필요한데 지금 와 줄 수 있겠나?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급하게 갈겨 쓴 글씨 같았다. 최근 그쪽 사정도 바쁘다고 들었는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모험가는 하려던 일을 모조리 팽개치고 서둘러 용머리 전진기지로 향했다. 오르슈팡! 무슨 일이야! 다급하게 뛰어들어간 모험가가 본 광경은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한껏 퍈안한 자세로 기대어 앉은 채 삐딱하게 모험가를 올려다보는 오르슈팡이었다.
"오느라 수고했네. 이제 다시 가 봐도 좋아."
또 너냐!
"허술한 수법에 당했다는 그 자괴감 섞인 표정... 아주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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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프란셀의 증언도 있었다.
"오, 망한 집 넷째아들 아니신가."
프란셀이 용머리 전진기지를 방문했을 때, 오르슈팡의 행동은 평소의 그가 하던 것과는 어딘가 달랐다고 한다.
"자네 무슨 일 있었나?"
"일이야 늘 있지. 와서 내 어깨나 좀 주물러 보게."
프란셀은 우선 시키는대로 그의 등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나도 안 시원하군."
"...아, 다음에 올 때는 연습이라도 해 오겠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험가가 용머리 전진기지를 방문했을 때, 프란셀이 오르슈팡의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아, 저기 우리의 새 벗이 왔네. 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을 벗을 위해 가서 따뜻한 차 좀 내오게."
프란셀이 빠르게 주방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오르슈팡은 모험가와 눈이 마주치자 눈썹을 치켜뜨며 씨익 웃어보였다. 모험가는 이를 악물었다. 이 가짜가! 모험가는 미리 준비해 온 변신 해제 물약을 오르슈팡에게 뿌려버렸다.
쨍그랑. 프란셀이 가지고 오던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였다.
-
부하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모험가가 그 임프를 만났던 시기는 매번 오르슈팡이 용무가 있어 잠깐 용머리 전진기지를 비우게 되었을 때였다. 처음부터 오르슈팡인 척하고 접근했기 때문에 부하들도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라고.
하지만 더 이상 모험가의 눈은 속일 수 없게 되었다. 마물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매일같이 상대하고 있는 데다, 몇 번 당하고 나니 이제 모험가도 척 보면 척이었다.
"어서 오게!"
이제 안 속는다. 모험가는 변신 해제 물약을 꺼내들었다.
"쳇. 그래도 점점 늘어가는 눈썰미, 아주 좋아! 그럼 어디 슬슬 난이도를 높여가 볼까."
또 속겠냐?
"지난번에 만난 오르슈팡, 사실 나였는데?"
지난번? 지난번이 언제였지? 모험가가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오르슈팡을 따올리는 사이 오르슈팡의 모습을 한 임프는 도망칠 준비를 마쳤다.
"뻥이지롱! 순간 흔들린 동공, 아주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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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한 번 쯤은 일부러 속아주는 것도 괜찮잖아?"
모험가가 마침내 문제의 임프를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을 때였다.
"이만하면 모습도 똑같고, 말투든 행동이든 얼마든지 원본이랑 똑같이 해 줄 수 있다고?"
그건 그래. 모험가는 생각했다. 겉모습과 목소리만 봐서는 실제의 오르슈팡과 분간이 가지 않았다. 마물이라는 위화감과 모험가를 대상으로 하는 장난기 가득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부하들이 충분히 속았을 만도 했다.
"솔직히 오르슈팡도 너더러 벗이니 맹우니 하지만, 정작 그런 벗이 찾아오더라도 본인 일이 바빠서 눈 한 번 마주칠 시간도 없을 때가 많잖아? 보라고, 오늘도 진짜 오르슈팡은 이슈가르드에 가 있는 날이야.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모험가는 그를 붙들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나를 오르슈팡으로 생각하고, 오르슈팡이랑 벗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 보는 건 어때. 오늘처럼 오르슈팡이 부재인 날엔 내가 너의 오르슈팡이 되어 주겠단 뜻이지."
이 마물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험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오르슈팡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오르슈팡의 모습을 한 마물은 오르슈팡의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자네를 혼자 둘 순 없기에 최대한 서둘러 처리하고 왔다네. 자네가 오는 날 내가 어찌 이 자리를 비우겠는가!"
지금 이 녀석은 확실히 마물이다. 오르슈팡으로 변신한 임프야. 하지만 방금 건 진짜 오르슈팡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는 거야? 그러는 사이 모험가의 손에서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아무 말도 않고 서 있나? 내 말이 들리는가?"
그 말과 함께 오르슈팡이 갑자기 민필리아의 모습이 되었다. 순간 모험가는 으악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결박이 풀리자마자 날아오른 임프는 이번에도 또 문을 열고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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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좀 위기일 지도 모르겠는걸. 모험가가 예기치 못한 전투 상황에 처하게 돠었을 때였다.
"위험해!"
그렇게 외치며 나타난 것은 이런 뜬금없는 곳에 나타날 리가 없는 오르슈팡이었다.
"여긴 내게 맡기고 우선 물러나게!"
이 녀석 싸울 줄은 아는 거야? 모험가는 오히려 신경이 쓰여서 적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모험가가 걱정한 대로, 이 마물에게는 실제 오르슈팡 만큼의 전투 실력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무기도, 전술도 없이 앞으로 무작정 나섰을 뿐이었다. 적의 화살이며 마법이 사정없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괜찮은 건가? 마물은 저래도 괜찮은 건가? 모험가는 공격이 그에게 집중된 사이 호흡을 재정비했고, 틈을 노려 적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모험가는 상처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오르슈팡을 보자 마음이 착잡했다. 오르슈팡이 이렇게 다친 모습을 보여주다니, 이번에야말로 이 녀석 아떻게든 응징해버려야…
"사실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였는데 말이아. 하필 이런 데에 있을 건 뭐야."
어찌 된 일인지 오르슈팡의 모습을 한 마물은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다친 건가? 모험가는 인상을 찌푸리고 가까이로 갔다. 그는 미소를 띤 채 모험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방금 순간적으로 진짜인가 생각했지?"
전혀 아니었거든?
"후후, 그래? 역시 대단하군. 그렇다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흔들린 눈빛, 아주 좋아...!"
아니 이런 미친, 속이기 위해서 일부러 위험에 뛰어드는 놈이 다 있아!
"그동안 나 같은 것과 놀아줘서 고마웠다. 임프로서 좋은 삶이었어."
죽는 건가? 아 마물, 이거 지금 유언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그보다 오르슈팡 모습 하고 죽지 말라고! 모험가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충격을 받는 동안에 별안간 주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다 쓰러뜨렸던 적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야. 모험가는 서둘러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적들이 펑 펑 하고 일제히 임프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었다. 모험가가 어안이 벙방해서 주변을 둘라보다 다시 발밑을 보았더니 상처투성이 오르슈팡의 모습은 없았다. 대신 저 멀리에 임프 무리들에 둘러싸인 채 유유히 멀어져가는 말끔한 오르슈팡의 뒷모습이 있었다.
너를 만나기 꽤 전에, 혼자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라 부분적으로 기억이 왜곡됐을 수도 있어. 아무튼 그게 진짜로 작별인사였던 건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는 용머리 전진기지에서 오르슈팡 행세를 하는 마물은 한 번도 안 보이더라. 모험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험가의 이야기를 다 들은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어. 어쩌면 마지막 건 진짜 헤어진다는 의미의 작별인사가 아니라 '가짜 오르슈팡'으로서의 작별인사였는지도 모르지. 지금은 오르슈팡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척 하고 있는 걸지도? 동료가 씨익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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